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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보는 3가지 시선

백두무궁 2017. 1. 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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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보는 3가지 시선

 

 

 

들어가며

 

수강책자를 보며 이 수업을 선택할 때가 생각난다. 단순히 박정희 경제개발을 비판 하는 내용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크게 빗나갔었다. 개강철회와 수강신청 변경도 생각해보았지만 발표순서 첫 번째로 선택되어서 그냥 듣자이런 생각으로 수업을 듣기 시작 했다. 수업을 듣기 전 나의 인식 틀은 반민족주의자, 친일, 친미 주의자, 독재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 좋은 점은 한 가지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박정희가 시행했던 경제개발 방식에서 일부 긍정적인 부분이 생각되기 시작했고 박정희를 반대했던 사람들도 새롭게 생각해보게 됐다. 수업을 수강하면서 박정희를 반대하고 타도를 외쳤던 세력들이 경제개발 정책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생각은 점점 사실로 받아 들어졌고 이제는 사실인 것 같다. 근대화가 되기 전까지 수많은 아픔과 희생에 대해서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도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전부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당시 정치인들만 봤을 때는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인들에게는 노동자들의 삶은 중요치 않았고 주요 현안도 아니었다. 일본한테 돈 받은 것이 문제였고 그 돈의 일부를 정치자금으로 사용 된 것이 주된 문제였다. 근대화를 시켜야 하는 것에는 어느 누구도 반대는 없었다. 농민 노동자 빈민들의 고통은 근대화 하는 광정에서 일부 정당화 되었다. 내가 이 정도 물질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박정희의 산물이 아니었을지 생각도 해보게 된다.

 

과거 국가주도의 발전인 박정희 시대와 현재 민간이 주도하는 발전에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 했다. 물론 옳은 것은 없을 수도 있지만 더 나은 선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만약 박정희가 아니라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해주면서 국가주도 발전을 해갔다면 그 인물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라는 의문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나의 고민을 바탕으로 건국과 부국, 동원된 근대화,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 이 3가지 책의 시점을 하나하나 이야기 해보자고 한다.

 

건국과 부국

 

이름만 들어도 대충 알 수 있었다. 한반도의 역사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단군은 이승만이고 고구려는 박정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승만 정권의 끝맺음은 미국 영향이 컸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 작용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말하는 것만 봐도 4.19를 바라보는 이분의 시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나와의 다른 점이 더 많았지만 박정희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내용들은 상당히 날카로웠다. 일부에 대해서는 동의하게 만들었다. 책을 보면 민족주의와 자주성에 기반을 둔 혁명 이념에 따라 혁명 정부가 애초에 구상했던 경제발전계획은 농업육성을 통해 국내시장을 확대하고 기간산업을 건설하여 수입대체 효과를 거둠으로써 자립경제를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라는 부분이 나온다. 박정희정부의 초기 계획은 당연한 계획 이였다. 일단 먹고사는 것이 문제였던 시절 이었고 원조 물자에만 의존하던 시절 이였다. 하지만 쌀값 파동과 화폐 팽창, 화폐개혁의 실패, 외자도입의 부진 등으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미국의 재정안정정책 강권을 받아들이는 한편 경제개발 계획에 대해서도 수정을 했다.

 

그것은 수출지향 공업화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공업화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적대적 재벌관계에서 친 재벌 관계로 돌아선다고 책은 서술 했다. 상당히 새롭고 신선했다. 한국은행 산업은행 뿐만 아니라 시중은행들도 실질적으로 국유화 시켰다고 나온다. 이 부분을 보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은행을 국유화 시키는 것은 내 꿈이고 자본주의의를 어느 정도 통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박정희의 사고관은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방식만은 나와 비슷한 점이 있어서 놀라웠다. 하지만 관치 금융의 문제점을 책에서도 지적하지만 재벌들에게만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국가의 사금고화 되어 금융의 부실의 원인이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영세 상인과 서민에게는 돌아갈 자금 지원의 기회를 박탈 당한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어쩔 수 없다는 표현을 했었다. 어쩔 수 없는 점은 나에게는 동의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였다. 하지만 그 당시 정치인들은 경제개발에 대해서는 거의 다 동의 했다. 개발 정책에서의 문제점은 재원마련이 큰 문제였다. 화폐개혁과 저축운동들은 벌이면서 한반도에서의 돈은 끌어 모으기 위해 노력했었다. 하지만 화폐개혁은 실패로 돌아갔고 저축률은 높아지기는 했지만 기반 시설 확충을 위해서는 턱 없이 모자랐다. 역시 책에서도 나오지만 재원마련의 하이라이트는 한일국교정상화였다. 박정희는 이 협상과정에서 엄청난 국민적 저항을 받았다. 지금보다 훨씬 반일감정이 강했던 시기였고 해방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라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동의와 지지를 바탕으로 박정희는 결국에 성사 시키게 된다.

 

야당이든 재야든 박정희의 행태에 큰 불만이 있었지만 경제개발에 대해서는 반대가 없었다. 그것을 딱 보여주는 사례가 베트남 파병 이었다. 외교적으로도 국제 고립을 초례했고 수많은 남한 젊은이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하지만 야당은 한일국교정상화 당시에 비해서는 소극적인 반대만 표출 했고 거의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한일국교정상화 보다 더 큰 문제였지만 야당은 경제개발 논리로 소극적 반대만 했던 것이었다. 지금 박정희시대 민주화를 외쳤던 수많은 정치인들은 정권을 잡느냐가 관심이 있었지 민중의 아픔과 고통은 관심에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에서는 군대의 현대화 군인에게 지급되는 달러 그리고 소요되는 장비를 직접 만들고 수출해서 벌어들인 수입들을 파병의 당위로 주장한다. 국가기반시설 확충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발전이 누굴 위한 발전인지? 희생을 누구에게만 강요 되는지?를 볼 때 저자의 말들은 쉽게 동의하지 못하게 한다. 저자는 농민과 공장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당시를 왜곡하는 것이고 그 당시 통계를 맹신하는 것 밖에 표현 되지 않는다. 저자 뿐 만 아니라 그 당시 지식인들은 개발과 민주화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동원된 근대화

 

수업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두 단어가 있었다면 박정희와 조희연이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조희연 교수님 수업을 들어 본적도 없었고 얼굴도 몰랐다. 다만 일심회 사건 때도 그렇고 여러 사회 논쟁에 글을 많이 쓰시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수업 때 조희연 교수님의 관련 발언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만 눈에 쏙쏙 들어왔다. 달리 말하자면 책이 상당히 어렵고 복잡했다. 김보현 교수님과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처음에는 들었다. 그러나 읽을수록 상당히 민족과 국가에 대해서 호의적인 모습을 보고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을 보면 왜 한국의 개발 동원체제는 약탈국가가 아니라 그래도 성장 지향적인 발전 국가가 될 수 있었는가? 특히 한국 발전 국가의 주도 세력인 군부가 어떻게 근대화에 돌진할 수 있었는가?’ 이런 질문들이 나온다. 상당히 좀 놀라운 질문들 이었다. 질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를 볼 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유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탈국가가 아니면 괜찮고 성장 지향적인 발전 국가면 좋은 것인가? 이런 질문 자체는 박정희에 대한 발전과 근대화적인 측면을 긍정한다는 의미라고 해석 할 수 있다. 물론 책에서는 단순히 분석을 하고 있고 양비론도 나쁘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이미 저자의 속내를 비추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상당히 수업을 듣고 난 후에 나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저자는 그 이유로 냉전적 대결의 위협효과와 경쟁효과가 한국의 개발동원 체제에 긍정적으로 작용 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분단국가에 대한 위협 및 경쟁효과를 미치는 구조 속에서 작동했고 이것은 개발동원체제가 개발의 성취를 향한 긍정적인 추동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조건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글을 읽을수록 근대화와 개발과 발전은 꼭 필수적인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박정희의 어두운 부분은 빼먹지 않고 꼭 지적하고 있다. ‘냉전적 대결 상황으로 두체제가 부단히 경쟁하여 경제적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체제가 대단히 폭압적이고 부패했지만 그래도 개발 추동적인 국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개발 추동적인 국가로 작동이 긍정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행이다. 라고 해석하고 있는 점이다. 짐작해보면 박정희 시대의 개발동원 체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긍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재평가로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이영훈의 박정희 시대 재평가이며, 다른 하나는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이다. 전자는 중진 자본주의 혹은 식민지 근대화론적 입장의 연장선에서 민주 진보 담론 정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탈근대론 혹은 탈 민족주의론적 입장에서의 민주 진보 담론 정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가 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에 대해서 비판 하는 것 중에 그 당시 임금이 다른 국가에 비해 물가대비 안정적이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투쟁의 과정에서 이룩한 성과물이라고 지적한다. 정말 정확한 평가이다. 전태일의 분신과 같은 노동자들의 자기희생과 투쟁이 없었다면 결코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책에서 아쉬운 부분은 저임금, 체불에 대한 문제점을 더 지적했어야 한다. 그 당시 임금 수준이 과연 적당 했을까? 이다. 수치나 통계로만 바라본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통계나 수치적으로는 정상적일지는 모르지만 실제 임금수준은 한 가구 아니 한 개인이 살아가기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 이었다. 또 체불임금에 대한 문제는 사회 전반적 문제일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설명을 덧 붙여야 박정희 시대의 노동 문제를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임지현의 경우 기존의 독재는 강압과 그에 의한 민중의 희생 혹은 영웅적 저항으로만 환원 될 수 없으며, 강압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 측면들, 그 핵심적인 것으로서 독재에 대한 민중의 자발적 동위 그 결과로서 독재의 대중적 기반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고 설명 하고 있다. 저자는 임지현의 탈 민족화 세계화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세계는 세계화를 외치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더 민족화 되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와 상당히 공감을 한다. 이미 임지현의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범위는 많이 지적을 당했었다.

 

진보와 보수의 틀에서 민족주의의 폭력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이용하는 것의 문제인 것 같다. 글로벌 가버넌스로 가기에는 이 세계는 너무 넓고 복잡하다는 측면에서 저자와 생각을 같이한다. 저자는 노동자의 희생문제 농민의 희생문제 중소기업의 희생문제 등을 이야기 하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일단 천민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자본주의가 천민적이거나 귀족적인 것이 있을까? 이미 전 세계 주요 국가 기업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찾아서 중국을 넘어 파키스탄 까지 생산기지가 옮겨지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천하고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북유럽의 복지 국가들도 신자유주의적인 노동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즉 한국 자본주의가 천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속성 자체의 문제점인 것이다.

 

저자가 계속 제기하는 중소기업 문제 또한 그렇다. 일단 소규모 작업장에서의 경우 노동자들은 열악한 대우와 노동환경에 쳐해 있다. 중소기업 사장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할지 모르지만 그는 일단 자본가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에서 좋은 노동 환경과 임금 수준이 아니라면 차라리 망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상당히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있다. 책 내용 중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 역시 불균형한 관계 속에서 성장의 과실이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탈적이고 불공정한 비대칭적 연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이 어렵게 자기 발전을 했다고 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희생이라는 규범적 언어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나온다. 이것은 저자가 생각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상당히 나와 견해 차이가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한국자본주의 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자본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고 문제이다. 전 세계 자동차 기업들을 보더라도 이 부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도요다 자동차는 이미 일본 자국산 부품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고 부품이 저렴한 다양한 나라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들도 한국의 부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들이 부품의 질이 좋아서 쓰는 것일까? 아니다 단지 부품의 단가가 자국의 부품업체보다 싸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짜내기 같은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저자는 한국 중소기업들의 사장은 불쌍한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들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도산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현상일 뿐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한국사회를 특수한 사회로 보지 말고 우리안의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또한 많은 아시아의 나라에서 전개되었던 식민주의의 유산이나 국가 범죄를 극복하기 위한 보편적인 규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특수적 이슈와 투쟁 속에 내재한 점을 아시아가 공감하는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적 담론으로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보편적 접근은 다른 국가에게 알리는 데는 유리하고 연대하기도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보편적 접근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그 안에서 행해졌던 폭력성을 정당화 할 수 있다는 문제를 가질 수 있다. 동원된 근대화는 말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미묘하게 박정희 시대의 개발과정을 약간 당연시하거나 옹호한다는 생각이 느껴졌다.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

 

처음 수업을 들었을 때 왜 교수님은 박정희를 비판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문제제기를 할까? ‘힘을 합쳐도 뉴라이트 같은 사람들과 싸우기도 힘든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의미없는 말장난이고 비판하기 위한 비판으로도 생각됐다. 나란 인간을 생각해 볼 때 당연한 생각이었다. 매달 당비를 내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지만 선거 때면 민주당을 뽑는 나였다. 박정희는 기회주의자에 민중을 고통 받게 한 사람, 독재자, 친미주의자, 일 뿐이었다. 당연히 나 또한 아무런 생각 없이 박정희를 비판 하던 사람들과 동조하며 그를 비난했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해보니 비판하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박정희를 비판하는지 몰랐었다.

 

책에서도 많이 언급되지만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인 것 같다. 박정희나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크게 민족주의를 이용해 먹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민족 대 반민족의 구도가 아닌 민족 대 민족의 틀 속에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김대중이나 김영삼이나 노동자 농민들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박정희 독재를 지적하던 많은 지식인들도 또한 그렇다. 물론 그 속에는 아닌 분들도 상당 수 일 것이다. 크게 박정희가 지적 받는 것은 한일국교 정상화로 일본에서 원조 받은 점과 베트남 파병으로 외화벌이를 한 것이다. 박정희를 비판 하는 사람들도 그런 식의 경제개발은 문제였다라고 말한다. 즉 경제개발은 꼭 필요했지만 그 방식이 잘 못 됐을 뿐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박정희가 실행한 그런 판단은 잘못 된 것일까? 책에서도 나오지만 박정희 정권기의 경제개발은 명백히 민족주의적이며 한국자본주의의 발전과 자립을 진전시킨 주요 추진력이었다.” 이 글을 수업 첫날 봤으면 수강 변경까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을 다 듣고 이 문장을 볼 때의 느낌은 당연하다고 생각 됐다. 박정희가 선택한 방법은 국가발전을 위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 이었다. 과거에 난 이것을 부정하고 싶었고 그 당시에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 했었다. 국내 자본만으로 한계가 있었던 시기에 산업화를 위해서 외자유치는 필수였다. 박정희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베트남과 일본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발전의 형식이 정의롭고 존경 받을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폭력과 희생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이다. 책에서는 원풍모방과 같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서술했다. 이것은 정말 충격적 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을 지원 하고 도와준 단체라고는 산업선교회 뿐 이었다는 거다. 티비에서 나오는 민주화를 위해 힘쓰고 박정희 시절 감옥에 들어가서 싸우신 분들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그들이 바라는 민주화와 경제개발 이라는 것은 과연 공장에서 겨우 살아갈 정도만 받는 임금과 최악의 노동 환경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단지 저항 엘리트들은 박정희가 독재를 하는 것이 싫었고 그 권력의 기회를 자기들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박정희가 만주무관학교가 아닌 현재 북유럽의 복지국가에서 교육 받았다면 어떤 후세의 평가를 남겼을까? 이런 계속 의문이 생기게 된다. 박정희식의 국가주도형 개발은 상당한 반 신자유주의적 요소였다. 의료복지와 사회 기반시설은 전부 국유화였고 물가도 어느정도 통제 했었다. 물론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박정희의 정권도 물가 통제능력을 상실하기도 했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민족주의자라고 말하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들은 국가 주도형에서 민간주도형으로 경제개발을 바꿨고 세계화에 앞장섰다. 신자유주의 적인 노동환경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했다. 민족주의자들이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면서 빠짐없이 지적했던 정경유착도 변하지 않았다. 반민족 대 민족이 아니었고 민족 대 민족의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싸움이었다. 책과 다른 점은 나는 민족주의에 대해 아직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착한사람이 권력을 잡고 국가를 통제하고 민족주의를 이용한다면 지금보다 좋은 사회가 올수도 있을 것 같다.

 

마치며

 

조희연, 김일영, 김보현 대 저자의 글들을 한 번에 비교 분석하고 평가 하고 싶었지만 나의 역량이 많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챕터를 나누어 썼다. 글을 쓰면서 조희연과 김보현의 책이 상당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시대를 비판하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큰 차이도 있었다. 민족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에서다. 조희연은 민족에 대해서 희망이라고나 할까 어찌보면 가장 보편적 정서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틀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고자 한다면 김보현 교수님의 관점은 계급적인 틀에서 바라본 듯 하면서도 아닌 것도 같다. 수업을 들으면서 느꼈지만 새로운 것을 찾고자 했다. 즉 계속되는 고민이었다. 공동체가 가장 김보현 교수님의 대안 사회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 사회도 문제가 있었고 교수님도 고민된다고 말씀했었다. 민족주의 비판에는 동의 하지만 뭔가 확실한 대안을 말하지 못 할 때의 그 아쉬움은 술을 마시고 3차를 못가는 느낌과 비슷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추천이 없었다면 평생 볼일이 없을 것 같은 책 건국과 부국을 보면서 약간은 두려웠다. 3가지 책 중에서 가장 쉽게 이해되고 잘 읽어졌다. 아무 생각과 비판의식 없이 본다면 올커니이런 느낌이 올 정도였다. 경제학적인 틀로 사회를 바라보고 통계와 수치 정치적 논리 등으로 박정희 시대를 평가한 건국과 부국은 한 가지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밑바닥 민중의 정서가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수치와 국가발전이라는 이야기 뿐 이었다. 현재도 문제지만 국가발전의 수혜자는 국민이 결코 아닌 것에 문제가 있다. 건국과 부국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져 좋은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그 당시 근로조건이 좋았던 원풍모방만 하더라도 저임금과 저질의 노동조건에서 고통 받고 있었다. 고 김일영 교수가 이런 점을 고려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민족 대 반민족 구조가 아닌 새로운 고민들이 더 많이 됐으면 좋겠다. 정답은 있을 수 없지만 조금씩 더 좋은 선택을 한다면 보편적으로 누구나 공감 할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 하며 이상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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