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고양 저유소 화재 원인은? 상암 석유비축기지 비교분석

백두무궁 2018. 10. 1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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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저유소 왜 폭발했나?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상암 문화비축기지에서 잠깐 일하면서 과거 석유비축기지 시절 인터뷰를 할 수 있었고 나름 시설들을 자세히 관찰했었다.


사실 석유비축기지나 저유소, 유류저장소 들은 관계자 이외에는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통제뿐만 아니라 사실 저곳이 뭐하는 시설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 이유는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비축기지도 석유비축기지 시절에는 매봉산에 둘러 쌓이고 땅에 파묻혀 있어서 산위에서 보지 않으면 뭔지 모른다.


즉 그냥 외부에서 쳐다보면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과거 석유비축기지를 자유롭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상암문화비축기지다.


지금은 대폭 문화시설로 리모델링했지만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탱크도 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고양 유류저장소 화재를 보면서 놀랐던 부분이 있다.


왜 잔디가 있지? 왜 접근이 쉽지? 불을 왜 발견 못 했을까?


구조의 문제


잔디가 인화성 물질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쉽게 잘 타는 것에 속한다.


특히 지금처럼 건조해지기 시작하면 말이다.


사실 누유나 가스유출이 문제가 됐을 수도 있다.


잔디를 보면 초록색인데 왜 불이 쉽게 났을까?


누유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땅 밑에 구멍을 파고 콘크리트로 둘러싸고 철판으로 윗부분을 덮은 구조인데....


탱크의 노출을 줄여서 외부의 충격을 최대한 방지하겠다는 의도는 알겠다.


그러나 탱크와 간격을 두지 않고 그대로 흙을 덮어서 잔디를 심었기 때문에


잔디에 불이나면 탱크까지 너무 불이 쉽게 확산할 수 있는 구조다.



위 사진 바로 아래 탱크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과거 상암석유비축기지 탱크다.


산 밑은 바로 낭떠러지다. 현재 기름이 없기 때문에 따로 관리는 하지 않고 있다.



현재는 관광객이 볼 수 있게 길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뚫어서 입구를 만들었지만


사진을보면 콘크리트구조물이 윗부분은 하얗고 밑은 황토색인게 보일거다.


황토색 부분까지 원래 땅에 덮여있었다.


 

탱크는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들어가 있는 형태이고 탱크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붙어있지 않고 떨어져 있다. 잔디등은 없고 오로지 콘크리트만 있다.


즉 풍등이 들어와도 태울수 있는 물질 자체가 없는 것이다.




위 사진들이 환기구로 추정되는 사진이다.


현재 유력한 화재원인은 풍등이 잔디에 불을 옮기고 그 불이 환풍기까지 옮겼다는 시나리오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환기구가 인화성 물질인 잔디와 너무 가까이 있고 외부의 접근이 너무 쉬운곳에 있다.


다시 서울상암 석유비축기지로 돌아가면





외부 접근이 어려운 낭떠러지 구조이고 탱크주변에 불이나도 빈 공간이 있어서


불이 탱크까지  접근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구 상암석유비축기지는 보안시설이었고 70년대 박정희 정부 당시 석유파동과 더불어


북한에서 침략 시 서울이 한 달 이상 버틸 기름을 저장하는 곳 이었다.


즉 안보용 성격이 강해서 각별히 화재 외부충격 안전에 신경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석유비축기지는 70년대 말에 완공된 건물이다.




현재 석유비축기지, 저유소들의 기술발전이 안전보다는 원가절감에만 신경쓴게 아닌지 씁쓸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과연 인재인가?



화재부터 폭발까지 18분의 시간이 있었고 근무인원은 4명 cctv는 45대가 있었다.


그럼다시 상암석유비축기지로 돌아가자


상암석유비축기지 시절 지사장인 고대영님의 인터뷰 내용이다.


"관리 인원이 열 몇 명 있고 경비직원들이 한 40명. 경비원들이 왜 많냐면? 4조 3교대야 다른 사람들이 10시간씩 근무하면 3교대가... 그 사람 들이 한 번씩 쉬어야 한단 말이야... 토요일도 일하고 일요일도 일하니깐 4조 3개 조를 하다 보니깐 40명이 있어야해 경비원까지 하니깐 60명 됐죠."


관리인원 20명 정도 경비직원은 40명 정도였다. 총 60명 정도다.


물론 24시간 관리를 했기 때문에 관리직원도 따로 있었고 경비직원도 10명이상 있었다.


그러나 고양저유소는 관리직인지 경비직인 시설직인지 모르겠지만 4명이다.


그렇다고 cctv를 계속 주시한것도 아니다.


어쩌면 옛날에 눈으로 24시간 관리한 것이 훨씬 안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외부에서 날아오는 불씨에 대한 언급도 한다.


"그 당시에는 쓰레기장에서 불이 많이 나요. 그러면 비상이야... 바로 뒤에 능선 뒤에 마을이 있어요... 그 사람들 개 잡아먹고 그것이 불이 옮기고... 화재가 나요... 하하 그것이 별별 얘기가 많습니다. 봄 새 풀이 나오기 전까지는 제일 위험해요."


일부 전문가들은 매우 희박한 확률이라고 말을 하지만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옆에 있었던 상암 석유비축기지는


불꽃이 많이 날라왔고 이에대한 대비를 항상하고 있었다.


근무 내용에 대한 언급도 있다.


"경비원들은 초소가 10개 가까이 있었고... 직원들은 기름은 저장 탱크에 가만히 두고 정부에서 공급령이 떨어지면 움직이느냐... 기름의 누유 여부를 확인 밑에서는 탱크 지붕까지 차배기가 있어요. 지붕에 올라가서 매일 기름을 측정합니다... 전날보다 기름 높이가 줄었는지 확인하고.. 휘발유 같은 경우 자연 감유 되는 거 또는 누유가 되는지.. 탱크 밑으로 내려가면 사다리로 내려가서 그 배수로의 거기에 기름이 있나 없나 체크도 해야 하고 유관 체크도 해야되고 기름도 체크해야 되고 누유 여부 현장 측정은 2번을 합니다. 출근 시 퇴근직전에 측정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만약에 언제 비상시 공급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니깐 점검을 해야 해요. 탱크로리에 로디관이라고 있는데 그런 것도 손도 보고 겨울에는 습기가 차가지고 뜯어보면 물이 나와서 작동이 안 되고 그런 것도 제거해야하고 소방훈련도 마포소방서와 합동 훈련도 하고 보안시설이라고 하지만 정기적으로 마포경찰서장하고 경비과장이 일주일에 한번 들립니다. 감시하는 게 아니고 별문제 없는지 확인 합니다."


초소 10개에서 항상 감시를 했고 감유, 누유, 배수로 유관체크를 하루 2번 했다. 출근전 1번, 퇴근전 1번 교대인력마다 했다고 말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과거에 비해 현재의 저유소 관리체제가 얼마나 허술한지 알 수 있다.


매일 누유나 감유에 대해서 유관 실측이나 체크를 하는지 의문이다.


정밀검사 주기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원유 비축기지 탱크 보면 7년마다 개방 점검을 해... 석유를 다 빼고 비파괴 검사를 한다고 거기에 금이 간다거나 부식이 된다거나"


그럼 현재의 정밀검사 주기는?


11년이다.


왜 이런일이 발생했을까?


안전인원을 줄이고 정밀검사 주기는 길어지고...


사실 정답은 어렵지 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한송유관공사는 1990년 설립 당시에는 공기업으로 출발했지만 2001년 민영화돼 SK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즉 민영으로 바뀌면서 영리를 추구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의견이다.)


그럼 현재의 저유소 탱크들은 안전할까?



외부 충격이나 화재에 취약한 형태다.


오히려 고양 저유소가 땅속에 묻혀있어서 탱크가 노출면이 적어서


외부충격이나 화재에 더 안전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물론 누가 강한충격을 주거나 불을 강제로 저지르지 않으면 일어날 확률이 낮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이번에 그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


그렇다면 노출이 많은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하는데....



광주 저유소 보안인력은 평일 3명 휴일엔 2명이다.


테러나 재해에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아까 과거 서울 상암 석유비축기지는 60명이 근무했다.


정부는 스리랑카 외국인에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sk에게 시설관리 및 보안 인원 확충을 요구하고 시설 취약점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에서 사업을 강제 회수 조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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